'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까지도.'
가슴이 너무 아파서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215페이지 안에 너무 많은 슬픔이 있었다.
어린 새
사실 슬픈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내 인생 자체도 슬퍼서 굳이 다른 슬픔까지 느끼고 싶지 않았다.
처음 등장하는 에피소드로 개인적으로 서술방식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떠오르게 했다.
중학생의 어린 동호는 시위 후 돌아오지 않는 정대를 찾아 상무관으로 간다.
어디에서도 정대를 찾을 수 없다고 얘기했지만 마지막까지 정대와 함께 있었다는 건 자신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모두가 함께여서 생겼던 용기가 총성에 흩어지고 홀로 도망쳤다는 죄책감과 양심만이 도시 전체에 스며든다.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려한다. 그걸 이기려고 어깨를 앞으로 수그리고 걷는다.'
동호는 상무관에서 그나마 '간단한' 일인 시신을 유족에게 확인해 주고 정리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까지어린 동호가 짊어져야 하는 일이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고통을 동호는 너무 이르게 깨달아버렸다.
쇠와 피
네 번째 이야기에는 그날 상무관에 있었던 진수의 이야기가 나온다. 진수는 상무관에 남아있던, 빵을 더 먹어도 되냐고 묻던 순진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에게 군인들이 쳐들어오면 항복하라고 말한다.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의 얼굴은 피로 물들고 진수는 감옥으로 끌려간다.
석방이 되고 나서도 진수는 그날에 갇혀 살다 죽는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이지 않냐고 울먹였던 소년을 본 날, 빵과 우유 하나에도 행복해하던 아이들이 죽었던 그날, 군인들이 쳐들어 온 그날에 진수는 이미 죽어있던 게 아닐까.
끝내며
모든 등장인물들이 혼자 살아남았다는 부채감과 죄책감이 저변에 깔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자신의 상황에서 싸웠음에도 말이다.
여섯가지 이야기와 한 가지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고 글에 채 담지 못한 이야기들은 위의 글을 적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찼기 때문에 적을 수 없다고 변명해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코를 실컷 푸는 것 밖에 없었다.
검은 숨, 일곱개의 뺨, 밤의 눈동자, 꽃 핀 쪽으로 위에서 소개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다.
동호가 되었다가 누나를 찾아 헤매는 정대가 되었다가 누구보다 열심히 살려했던 정미가 되었다가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친 진수가 되었다가 자식을 잃은 엄마가 되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여섯번 마음을 잃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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