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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안전가옥 '아홉수 가위' (범유진)

by 정구찬 2023.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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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아홉수 가위로 범유진 작가의 단편을 붙였지만 작가의 1호선에서 빌런을 만났습니다, 아주 작은 날갯짓을 너에게 줄게, 아홉수 가위, 어둑시니 이끄는 밤 4가지 짧은 이야기가 담긴 미스테리한 단편집이다. 
 
 

 

줄거리

1호선에 빌런을 만났습니다

K장녀인 고은은 집에서는 남동생을 위한 삶을 살고 직장에서는 탁 팀장에게 늘 깨지지만 버텨야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출퇴근길 빌런이 많기로 소문난 1호선을 타고 다니던 고은은 오일장 할머니를 만나게 되고 씨앗 하나를 받게 된다. 우주 씨앗이라고 이름을 붙인 씨앗은 아주 쑥쑥 자라고 고은은 그 씨앗을 먹지 말라는 경고를 받지만 먹게 된다. 탁 팀장의 몰카 증거를 잡으려다 위기를 맞게 된 고은은 자신이 토해낸 우주씨앗이 탁 팀장을 삼키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똥이 돼버린 탁 팀장을 진시영, 윤이화와 함께 치우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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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날갯짓을 너에게 줄게

이나와 이지의 어깨에는 작은 날개가 있다. 남들과 다른 모습을 이나는 감추려 하지만 이지는 그런 이나를 답답해 한다. 그러던 어느날 이지는 남자친구의 꾐에 빠져 날개가 있는 것을 들키는 것도 모자라 사진이 퍼지게 되고 평범했던 삶을 잃어버린다. 아버지가 죽은 뒤 날개의 힘은 이지가 아닌 이나에게 들어오고 이나는 이지를 위해 아주 작은 날갯짓으로 이지의 삶을 망쳐버린 원흉을 없애버린다.
 

아홉수 가위

스물 아홉 살 회사가 부도나고 남자친구가 전세자금을 갖고 도망치는 악재를 맞는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나는 어릴 적 할머니와 살았던 곳에서 갖고 가는 음식만 다 떨어지면 죽기로 결심하고 떠난다. 가위눌림을 당하던 나는 베개밑의 가위를 귀신에게 집어던지고 이를 계기로 귀신과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친구 아닌 친구사이가 된 그들은 왜 귀신이 지박령이 되었는지 왜 '나'가 죽으려고 하는지 서로 이야기한다. 마지막 만찬으로 귀신을 위한 팝콘을 사러 가며 나는 귀신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 택시 아저씨, 전 남자친구에게 나타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귀신의 계속된 설득으로 나는 귀신이 좋아하는 아카시아 꽃을 사들고 다시 한번 살아내 보기를 결심한다.
 

어둑시니 이끄는 밤

희재는 어린시절 형을 잃어버리는 사고를 당했다. 야맹증이 있어 범인의 손목에 알 수 없는 문신이 있다는 것만 봤을 뿐 얼굴을 보지 못했으나 마을사람들은 그런 희재를 박하게 대한다. 이곳을 떠나겠다며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던 희재는 고향으로 내려온 송정우의 편의점에서 일하게 된다. 희재에게 살갑게 대해주던 감독할아버지가 사장님과 술을 마신 뒤 죽은 그다음 날 저녁 송정우에게 살해 협박을 받게 되고 어둠 속에서 도망친다. 어린 시절 형의 도움으로 마을의 길이라면 어둠이 있더라도 다 알고 있는 희재는 더 이상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느낀점

안전가옥 시리즈를 읽다 보면 여성 관련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하나같이 공감이 된다. '1호선에서 빌런을 만났습니다'는 우주씨앗이 나에게도 있다면 당장 삼켰을 것 같다. 마지막에 고은이 엄마의 닦달에 집에 가겠다는 문자를 보내며 자신이 먹은 열매씨앗은 네 개라고 말했을 때의 희열은 엄청났다. 

궤도를 이탈해 새로운 우주로 떠날 때이다.

 
'아주 작은 날갯짓을 너에게 줄게'는 이지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는데 본인만 모르고 있어 답답하면서도 슬펐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인 이지를 탓하고 있다는 사실에 불편해졌다. '네가 옷을 그렇게 입어서 그래'라고 말하던 사람들과 뭐가 다르겠는가? 이나의 작은 날갯짓이 이지의 절망을 조금이라도 덜어내주었으면 싶었다. 

나의 절망조차 이기적인 것이라면, 세상의 모든 절망을 집어삼킬 절망을 만들어 버리리라.

 
'아홉수 가위'는 네 가지 이야기 중에서 가장 따뜻한 이야기였다. 귀신이 좋아하는 아카시아 꽃으로 다시 삶의 용기를 얻는 모습도 판타지스러우면서 아름다웠다. 참지 말고 표현하라는 어릴적 할머니의 말도 와닿았다. 스물아홉이 될때까지 참기만 했으니까. 택시 아저씨가 오죽하면 자신이 음식을 갖고 이 주변을 돌았겠냐고 푸념 아닌 푸념을 했을 때 귀신이 얼마나 나를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 언젠가 '나'가 집을 조금씩 고쳐나가고 아카시아가 흩날리는 대청마루에서 귀신과 팝콘을 나누어 먹을 것 같다. 그런 장면을 생각하니 내가 다 행복해지는 것 같다. 

아홉수다. 지옥처럼 괴로운 일이 가득해 아홉수라면, 인생의 대부분이 아홉수다. 그러니 이 스물아홉의 여름도 언젠가 평범하게 지나간 과거의 일부가 되리라. 조금만 더 견디자. 견뎌야 할 일만 견디는 날을 보내자. 

 
'어둑시니 이끄는 밤'에서 처음에는 희재가 왜 범인에 대해 알 수 있는 단서를 말하지 않았을까 정말 답답했었다. 그렇지만 어린아이라면 더구나 야맹증이 있는 아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 어둑시니는 소년을 사랑하고 있다고 하는 게 무슨 얘기인지 몰랐는데 결말을 알고 나니 어둑시니가 소년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나중에라도 그 소년이 어둑시니의 사랑을 알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둑시니가 왜 커졌는지 알겠지? 그래, 소년이 무서워해서. 어둑시니는 말이야, 사람의 공포를 먹고 커지는 귀신이거든.
그러니깐 무서워하지마. 어둠은 소년을 사랑해. 알았지? 잊어버리면 안돼.

희재야, 너도 알게 될거야. 너를 해치는 어둠도 있지만 보호해주는 어둠도 있다는 걸. 
소년이 밤에 길을 헤매기라도 하면 제대로 된 길을 알려주었어. 내가 너에게 해주듯이. 소년은 어둠을 마주보며 어른이 되어 갔지. 희재야, 형이 뭐라고 했었는지 기억해? 

그래, 어둠은 소년을 사랑해
형은  너를 사랑해
잊어버리면 안돼.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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